제안 배경 및 내용
20년 전 처음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될 무렵, 궁금한 것투성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을 때, 어느 한 곳 속 시원한 대답을 해 주는 곳도 정확한 방향을 제시해 주는 곳도 없었습니다.
소아정신과와 여러 치료센터를 전전하다 보니 아이는 벌써 성인이 되어 버렸고, 돌아보면 정보의 부족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그 시간들이 너무 안타깝고, 그때 정확한 정보들을 듣고 더 효과적인 치료를 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그런데,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더 갈 길이 막막하고 답답합니다. 부모교육을 들어보면 생의 주기별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는 훈련을 하고... 라고들 하시지만, 실질적으로는 지금도 속 시원한 대답은커녕 어디 한군데 맘 터놓고 물어볼 곳도 없습니다.
내가 건강하게 아이를 보살필 수 있는 지금은 그래도 어찌어찌 살아가겠지만, 내가 없는 미래의 어느 날 나의 분신과 같은 이 아이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까를 생각하면 20년 전의 그 날보다 더 답답하고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두렵고 공포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우리 엄마들은 학교, 치료센터 등에서 귀동냥으로 정보를 얻곤 하는데요, 여러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자녀를 둔 엄마들의 고민이 다르고 특수 학교, 일반 학교 엄마들의 고민이 다르고, 여자아이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고민이 다르고, 장애 유형에 따른 고민이 다릅니다.
이렇듯 열 명이 모이면 열 명의 고민이 다르고 백 명이 모이면 백 명이 고민이 다릅니다. 얼핏 비슷한 듯 다 다른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엄마들이 모이기만 하면 아이의 고민을 나누고 자기의 직간접 경험들을 나누는 이유는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힌트를 얻고 해답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참 비 효율적인 방법이지요?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하루하루가 편리해지는 시대에 왜 발달장애인들의 삶은 이렇듯 주먹구구식이고 발전은 더딘 것일까요? 지체장애인들과 달리 발달장애인들은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일까요? 목소리를 내지 않은 이들은 국가 정책에서도 자꾸자꾸 뒤로 밀려나는 게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인 걸까요?
서두가 길었습니다.
제가 이 제안서를 빌어 제안 하고 싶은 것은
첫째, 발달장애인들의 교육, 치료, 건강, 직업훈련 및 취업, 가족지원, 그 외 생의 주기별로 필요한 모든 정보를 관리하고 필요한 이들에게 정확하고 적절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이미 운영되고 있는 가족지원센터, 발달 장애 지원 센터, 여러 장애인 복지관등을 잘 연계하여 데이터를 모은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발달장애인의 생의 주기별 필요한 정보를 총괄하고 제공해주는,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관련한 무엇이든 도움이 필요하고 정보를 얻고 싶을 때 마음 편하게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그런 든든한 기관설립을 제안합니다.
둘째, 발달장애인 노인 요양원의 설립을 제안합니다.
저는 요즘 아이의 생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있습니다. 언젠가 저를 대신하여 아이를 보살펴 주실 그분에게 드리는 아이의 정보와 부탁의 편지와도 같은 것입니다. 저희 아이는 독립적으로 살지 못하니 결국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인데, 국가에서 운영하고 관리 감독하는 곳이라면 더 신뢰가 가고 마음 편하게 아이를 맡기고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제 사후에 대한 불안감이 없어진다면, 아이의 평안한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다면, 아이와 저는 오늘 이 순간을 더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어린이와 노인과 사회의 약자들이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가 진정한 복지국가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가장 약자라 할 수 있는 우리 발달장애인들이 소박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좋은 정책으로 저희의 꿈을 실현시켜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